조선경제 박유연 기자 / 이영지 더비비드 기자
[스타트업 취중잡담] 전기차 배터리 '교체' 전용 스테이션 만든 피트인 김세권 대표
전기차 배터리 ‘교체’ 전용 스테이션 만든 피트인 김세권 대표. /더비비드
자동차 경주 대회인 ‘포뮬러 원(F1)’에서 타이어 4개를 교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초에 불과하다. 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레이싱의 세계에서 정비요원인 ‘피트 크루(Pit Crew)’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생업 전선에서 분초를 다투는 영업용 전기차 운전자들에게도 이런 ‘피트 크루’가 간절하다. 전기차 충전을 위해 1시간 가까이 허비하는 시간은 곧 매출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충전’ 대신 ‘교체’를 하면 어떨까. 우리나라 전기차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BSS) 시장을 선점한 스타트업이 있다. 현대자동차 책임 연구원 출신 피트인 김세권(44) 대표다. 전기차 택시는 피트인 스테이션에서 10여 분 만에 100% 충전된 배터리로 갈아 끼울 수 있다. 김 대표를 만나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는 인프라의 혁신에 대해 들었다.
◇전기차의 한계를 극복하는 법
김 대표는 현대자동차에서 15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김세권 대표 제공
홍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차량 전자 개발 부서에서 완성차가 나오기까지 발생하는 수많은 오류를 바로잡는 일을 맡았습니다. 13년 차부터는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팀으로 옮겨 차량 개발 전반을 살폈어요. 대기업 특성상 의사결정이 신중하다 보니 좀 더 도전적이고 속도감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습니다. 마침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제로원 컴퍼니 빌더 프로젝트’가 눈에 들어왔죠.”
영업용 전기차 시장의 ‘비효율’에 주목했다. “택시 같은 영업용 차량은 1년에 최대 15만㎞를 달립니다. 연료비 절감을 위해 전기차로 바꾸고 싶어도 충전 때문에 영업을 못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문제가 있었죠.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도 부담입니다. ‘배터리를 차주가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쓴다면, 차값도 내리고 충전 시간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제로원 컴퍼니 빌더 프로젝트 과정에서 MVP(최소기능모델) 개발하는 모습. /김세권 대표 제공
2022년 팀을 꾸리고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차종마다 휠베이스(축간거리)와 배터리 규격이 다르다는 점이 기술적 난관이었는데요. AI(인공지능)가 차량을 인식해 자동으로 리프트 위치를 조정하고, 라인을 따라 이동하며 배터리를 운송하는 로봇을 개발해 이를 해결했죠. 육성 기간 1년을 다 채우기도 전인 9개월 만에 조기 분사를 결정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땅을 계약하고 스테이션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교체한 배터리는 누구의 소유일까?
경기도 안양에 있는 피트인 스테이션 1호점. 설립 과정(왼쪽)과 운영 중인 모습(오른쪽). /피트인, 더비비드
2023년 7월 피트인을 설립했다. 피트인 스테이션 1호를 세울 지역은 ‘경기도 안양’으로 정했다. “전국의 택시 회사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보니 안양에 집중돼 있더군요. 곧바로 안양의 택시 회사들을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택시 회사에서는 비싼 전기차 가격과 배터리 수명 저하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배터리 수명이 85% 이하로 떨어지면 사실상 영업용으로 운행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택시 회사에서 배터리 유지·보수 관리까지 하기는 버거웠죠.”
차와 배터리의 소유권을 분리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현행법상 전기차 배터리를 차량 부품으로 보기 때문에 소유권이 차량과 묶여 있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에서 ‘배터리 소유권 분리’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받았습니다. 배터리 교체형 구독 시스템인 BSS와 결합된 전기차가 탄생했어요. 택시회사가 BSS 전기차를 기아에서 구매하면 차량 소유권은 택시 회사가, 배터리 소유권은 현대글로비스가 갖는 방식입니다.”
전기차 택시의 배터리를 교체하는 모습. /더비비드
BSS 대시보드. 배터리 교체 현황과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세권 대표 제공
2023년 10월 착공한 피트인 스테이션 1호는 이듬해 6월 준공됐다. “피트 크루는 상주 전문 인력 2명과 로봇들이에요. 차량이 스테이션에 들어오면 전용 리프트가 차를 들어 올립니다. 로봇이 새 배터리를 가져오면 전문 인력 2명이 배터리를 교체하죠. 이 모든 과정이 10~12분이면 끝나요. 기사님들이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면 충분하죠. 다 쓴 배터리는 스테이션 안에 있는 격납고에 서랍처럼 차곡차곡 쌓아 충전합니다. AI가 배터리의 잔존 수명과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해 알려주죠.”
BSS 전용 설비 외에도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200kW 급속충전기 5대를 설치했다. 2025년 11월 기준 BSS 계약 차량은 21대, 전기차 충전 멤버십 서비스 이용 차량은 267대다. 안양 권역 택시(약 800대)의 30%가 넘는 숫자다. “BSS 서비스는 LPG 택시보다 월 유지 비용이 저렴하다며 입소문이 나고 있어요. 스테이션 내에 궁금한 점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챗봇도 설치했습니다. 회원 카드를 대고 월 충전 횟수나 주행 거리 등을 조회할 수 있어요.”
◇LPG 충전소를 대체할 미래
피트인은 2025년 9월 디캠프 배치 4기에 선정됐다. /김세권 대표 제공
피트인은 2024년 매출 8억원을 기록했고, 2025년은 약 12억원을 예상한다. 2025년 9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관하는 스타트업 투자·육성 프로그램 ‘디캠프 배치 4기’에 선정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디캠프의 지원 덕분에 해외 진출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단기적인 목표는 수도권 내 거점 확장이다. “안양 1호점에 이어 인천에 2호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호점에는 더욱 고도화된 2세대 교체 로봇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에요. 기존엔 2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1명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수준이죠. 전방향 자율 주행하는 배터리 이송 로봇과 배터리 교체 전용 로봇 매니퓰레이터(인간의 팔과 유사한 동작을 하는 로봇의 기구)도 제작했습니다.”
전기차에 이어 ‘자율주행차’의 유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 대표. /더비비드
‘전기차’의 대유행을 지나고 있다. 다음은 ‘자율주행차’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스스로 스테이션에 들어와 배터리를 교체하고 나가는 시스템이 필수적입니다. 피트인 스테이션은 당장 내일 자율주행차가 들어온다고 해도 대응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한 로봇이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동안 다른 로봇은 실내 청소까지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 LPG 충전소가 약 1900개 정도 되는데요. 이를 모두 피트인 스테이션으로 바꿔, 멈추지 않는 도시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2025.12.02. 14:19 원문
조선경제 박유연 기자 / 이영지 더비비드 기자
[스타트업 취중잡담] 전기차 배터리 '교체' 전용 스테이션 만든 피트인 김세권 대표
전기차 배터리 ‘교체’ 전용 스테이션 만든 피트인 김세권 대표. /더비비드
자동차 경주 대회인 ‘포뮬러 원(F1)’에서 타이어 4개를 교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초에 불과하다. 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레이싱의 세계에서 정비요원인 ‘피트 크루(Pit Crew)’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생업 전선에서 분초를 다투는 영업용 전기차 운전자들에게도 이런 ‘피트 크루’가 간절하다. 전기차 충전을 위해 1시간 가까이 허비하는 시간은 곧 매출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충전’ 대신 ‘교체’를 하면 어떨까. 우리나라 전기차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BSS) 시장을 선점한 스타트업이 있다. 현대자동차 책임 연구원 출신 피트인 김세권(44) 대표다. 전기차 택시는 피트인 스테이션에서 10여 분 만에 100% 충전된 배터리로 갈아 끼울 수 있다. 김 대표를 만나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는 인프라의 혁신에 대해 들었다.
◇전기차의 한계를 극복하는 법
김 대표는 현대자동차에서 15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김세권 대표 제공
홍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차량 전자 개발 부서에서 완성차가 나오기까지 발생하는 수많은 오류를 바로잡는 일을 맡았습니다. 13년 차부터는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팀으로 옮겨 차량 개발 전반을 살폈어요. 대기업 특성상 의사결정이 신중하다 보니 좀 더 도전적이고 속도감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습니다. 마침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제로원 컴퍼니 빌더 프로젝트’가 눈에 들어왔죠.”
영업용 전기차 시장의 ‘비효율’에 주목했다. “택시 같은 영업용 차량은 1년에 최대 15만㎞를 달립니다. 연료비 절감을 위해 전기차로 바꾸고 싶어도 충전 때문에 영업을 못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문제가 있었죠.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도 부담입니다. ‘배터리를 차주가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쓴다면, 차값도 내리고 충전 시간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제로원 컴퍼니 빌더 프로젝트 과정에서 MVP(최소기능모델) 개발하는 모습. /김세권 대표 제공
2022년 팀을 꾸리고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차종마다 휠베이스(축간거리)와 배터리 규격이 다르다는 점이 기술적 난관이었는데요. AI(인공지능)가 차량을 인식해 자동으로 리프트 위치를 조정하고, 라인을 따라 이동하며 배터리를 운송하는 로봇을 개발해 이를 해결했죠. 육성 기간 1년을 다 채우기도 전인 9개월 만에 조기 분사를 결정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땅을 계약하고 스테이션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교체한 배터리는 누구의 소유일까?
경기도 안양에 있는 피트인 스테이션 1호점. 설립 과정(왼쪽)과 운영 중인 모습(오른쪽). /피트인, 더비비드
2023년 7월 피트인을 설립했다. 피트인 스테이션 1호를 세울 지역은 ‘경기도 안양’으로 정했다. “전국의 택시 회사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보니 안양에 집중돼 있더군요. 곧바로 안양의 택시 회사들을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택시 회사에서는 비싼 전기차 가격과 배터리 수명 저하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배터리 수명이 85% 이하로 떨어지면 사실상 영업용으로 운행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택시 회사에서 배터리 유지·보수 관리까지 하기는 버거웠죠.”
차와 배터리의 소유권을 분리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현행법상 전기차 배터리를 차량 부품으로 보기 때문에 소유권이 차량과 묶여 있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에서 ‘배터리 소유권 분리’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받았습니다. 배터리 교체형 구독 시스템인 BSS와 결합된 전기차가 탄생했어요. 택시회사가 BSS 전기차를 기아에서 구매하면 차량 소유권은 택시 회사가, 배터리 소유권은 현대글로비스가 갖는 방식입니다.”
전기차 택시의 배터리를 교체하는 모습. /더비비드
BSS 대시보드. 배터리 교체 현황과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세권 대표 제공
2023년 10월 착공한 피트인 스테이션 1호는 이듬해 6월 준공됐다. “피트 크루는 상주 전문 인력 2명과 로봇들이에요. 차량이 스테이션에 들어오면 전용 리프트가 차를 들어 올립니다. 로봇이 새 배터리를 가져오면 전문 인력 2명이 배터리를 교체하죠. 이 모든 과정이 10~12분이면 끝나요. 기사님들이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면 충분하죠. 다 쓴 배터리는 스테이션 안에 있는 격납고에 서랍처럼 차곡차곡 쌓아 충전합니다. AI가 배터리의 잔존 수명과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해 알려주죠.”
BSS 전용 설비 외에도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200kW 급속충전기 5대를 설치했다. 2025년 11월 기준 BSS 계약 차량은 21대, 전기차 충전 멤버십 서비스 이용 차량은 267대다. 안양 권역 택시(약 800대)의 30%가 넘는 숫자다. “BSS 서비스는 LPG 택시보다 월 유지 비용이 저렴하다며 입소문이 나고 있어요. 스테이션 내에 궁금한 점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챗봇도 설치했습니다. 회원 카드를 대고 월 충전 횟수나 주행 거리 등을 조회할 수 있어요.”
◇LPG 충전소를 대체할 미래
피트인은 2025년 9월 디캠프 배치 4기에 선정됐다. /김세권 대표 제공
피트인은 2024년 매출 8억원을 기록했고, 2025년은 약 12억원을 예상한다. 2025년 9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관하는 스타트업 투자·육성 프로그램 ‘디캠프 배치 4기’에 선정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디캠프의 지원 덕분에 해외 진출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단기적인 목표는 수도권 내 거점 확장이다. “안양 1호점에 이어 인천에 2호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호점에는 더욱 고도화된 2세대 교체 로봇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에요. 기존엔 2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1명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수준이죠. 전방향 자율 주행하는 배터리 이송 로봇과 배터리 교체 전용 로봇 매니퓰레이터(인간의 팔과 유사한 동작을 하는 로봇의 기구)도 제작했습니다.”
전기차에 이어 ‘자율주행차’의 유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 대표. /더비비드
‘전기차’의 대유행을 지나고 있다. 다음은 ‘자율주행차’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스스로 스테이션에 들어와 배터리를 교체하고 나가는 시스템이 필수적입니다. 피트인 스테이션은 당장 내일 자율주행차가 들어온다고 해도 대응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한 로봇이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동안 다른 로봇은 실내 청소까지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 LPG 충전소가 약 1900개 정도 되는데요. 이를 모두 피트인 스테이션으로 바꿔, 멈추지 않는 도시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2025.12.02. 14:19 원문